1930년대 후반 지금의 성당 부근에는 정금성(암브로시오)씨 가정을 비롯한 4세대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았다. 이때만 해도 서울에는 명동성당과 약현(중림동), 영등포성당 등 4개 본당만이 있었을 뿐이다. 혜화동 성당 회장으로 건축업을 하던 이모형제가 길음동(당시 행정구역상 미아리)에 한옥 두 채를 지었으나, 한 채는 팔고, 한 채는 팔지 못했다. 성재덕 신부는 길음동에 본당을 설정할 목적으로 마련해 두었던 기금으로 1942년 남은 한 채를 사들여 공소를 설정하고 주보를 ‘성모칠고’라 정했다.
성모칠고 신심은 6세기부터 동방교회에서 발전되어15세기 말경에 성모칠락(聖母七樂)을 본따서 7개의 고통이라는 성모칠고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.
14-15세기에 성 빈첸시오 페레리오(1350-1413)는 설교 중에 성모칠고를 언급했다. 이 성모칠고의 신심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1492년에는 여러 지역들에서 성모칠고 신심의 평신도회가 결성되었고, 1495년에는 교황 알렉산델 6세(1492-1503)가 이 단체들을 인가했다. 같은 해에는 미셸 프랑수아 신부가 성모칠고 신심에 관한 저서인<7개의 칼에 찔린 성모>를 간행했다.